“교육의 힘으로 평화를 구현한다”
“교육의 힘으로 평화를 구현한다”
평화복지대학원은 평화를 교육하는 세계 최초의 특수대학원으로, 올해 개원 40주년을 맞았다.
평화복지대학원 개원 40주년, ‘평화는 개선보다 귀하다’는 이념에서 태동
경희의 평화 사상을 교육·연구·실천으로 확대해 ‘유네스코 평화교육상’ 수상
40주년 기념식 ‘빛의 언덕에 세운 뜻 40년’ 개최···동문·교수·직원 발전기금 기부
경희는 1984년 9월 25일 광릉캠퍼스 평화복지대학원(The Graduate Institute of Peace Studies)을 개원했다. 평화복지대학원은 평화를 교육하는 세계 최초의 특수대학원으로, 올해 개원 4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평화복지대학원이 지난 9월 28일(토) ‘빛의 언덕에 세운 뜻 40년’을 주제로 기념식을 개최했다.
“우리 모두의 미래 위한 ‘마음의 평화’를 현실로 전환하는 학습 기회 열어야”
40여 년 전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경희가 평화복지대학원을 개원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냉전이 극에 달하면서 세계 정치지도자와 군사전문가, 석학들은 1980년대 중반 이전에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세계 3차 핵대전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세력균형이라는 견제 수단의 전략이 오히려 군비경쟁을 부추겨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엔 총회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는 인류를 60회 이상 파멸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미국은 대륙간 탄도탄과 핵미사일 등을 격추하는 또 다른 무기 개발에 전력을 집중했다.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는 이 같은 시대 상황에 맞서 ‘핵대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전멸뿐이다. 신무기를 개발해 핵대전을 방지하려 할 것이 아니라 평화 사상을 고취시켜 국제대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 박사는 1981년 6월 28일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열린 6차 세계대학총장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University Presidents; IAUP) 총회의 기조연설 ‘긴급한 요청: 평화는 개선보다 귀하다(The Great Imperative: Peace is more Precious than Triumph)’를 통해 그 생각을 밝혔다.
조 박사는 전쟁이라는 가공할 인간의 비극을 만든 근인이 유네스코 헌장에 적시된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 있다고 설파하면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마음의 평화를 어떻게 현실로 전환해낼 수 있을 것인지 치열하게 학습하는 기회를 여는 것이 교육의 책무임을 역설했다. 아울러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선 개인과 사회, 대학과 국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시대의 당위성을 전하고,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 촉구를 제안했다.
600여 명의 세계대학 총장들은 이 제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엔에 의안을 제출할 권한이 없었다. 결의안은 로드리고 카라조 오디오(Rodrigo Carazo Odio)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유엔 총회에 제출됐다. 1981년 11월 30일 36차 유엔 총회는 15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매년 9월 셋째 주 화요일을 ‘세계평화의 날’(2001년부터 9월 21일로 고정), 1986년을 ‘세계평화의 해’로 제정·선포했다. 경희는 이듬해 세계평화의 날 제정을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세계평화 운동을 보다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학술적 깊이와 실천 의지를 겸비한 평화 지도자를 양성하는 평화복지대학원 설립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1986년 세계평화의 해를 기념해 영문판 『세계평화대백과사전(World Encyclopedia of Peace)』(영국 옥스퍼드 퍼가몬 프레스(Pergamon Press) 발행)을 펴냈다. 평화복지대학원 설립을 준비하던 1983년 평화 분야의 사전이 없음을 알게 된 조 박사는 간행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세계평화대백과사전』은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박사를 명예편집장으로 하고,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Javier Pérez de Cuéllar) 유엔 사무총장의 서언을 받아 전 4권으로 출간됐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발간된 평화백과사전이었다.
평화복지대학원 곳곳에는 이곳이 세계평화 운동의 요람이며 실천의 장이고 미래를 위한 준비의 장임을 뜻하는 조형물과 문구가 가득하다. ‘평화는 개선보다 귀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평화의 탑(사진)이 대표적이다.
“종합적 안목에서 미래사회 건설하는 역군 양성하겠다”
조 박사는 평화복지대학원 설립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구적 규모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현재의 방법과 같은 분석 위주의 전문화된 단편적 지식만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부분과 전체를 함께 볼 수 있는 종합적·입체적 안목에서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파악하는 데서 그 해결책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동양의 정신문명과 서구의 물질문명이 조화되고 동서 이념이 융화되고 하나의 세계공동사회가 이룩돼야 할 내일의 종합문명사회를 바라보면서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 당위적인 인류의 요청적 미래사회를 건설하는 데 유위한 역군이 될 수 있는 국제적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평화복지대학원을 설립한다.”
평화복지대학원 엠블럼에도 그 취지가 담겨 있다. 엠블럼은 학문과 진리 탐구를 의미하는 ‘책’, 평화와 인류애를 뜻하는 ‘지구’와 ‘월계수’, 온 인류를 상징하는 ‘남·여 나인상(裸人像)’으로 구성돼 있다. 중앙에 월계관이 횃불을 받쳐 들고 있는 형상은 현대의 어두운 문명사회에 진리의 등불을 밝혀 인류를 구원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엠블럼에 새겨진 글귀 ‘The World is a global village and the peoples of the world are one human family. Let us strive for peace and human welfare and build Oughtopia with the spirit of Global Cooperation Society(세계는 지구마을, 세계인은 하나의 인류가족이다. 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지구협동사회 정신으로 오토피아를 건설하자)’는 평화복지대학원 설립 취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엠블럼에 등장하는 지구협동사회(Global Cooperation Society) 정신은 선의(Goodwill), 협동(Cooperation), 봉사-기여(Service-Dedication)를 말한다. 조 박사는 이를 바탕으로 인류가 이뤄야 할 당위적 요청사회 ‘오토피아(Oughtopia)’를 건설해 지구상에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자고 주창했다. 그러면서 BAR, 즉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spiritually Beautiful, materially Affluent, humanly Rewarding) 사회를 이루기 위해 지구협동사회, 나아가 지구공동사회(Global Common Society)를 만들도록 하자는 뜻에서 1975년부터 GSC 운동(밝은사회운동)을 전개했다.
본관 홀 곳곳에는 평화복지대학원 개원과 함께 전달된 케야르 당시 유엔 사무총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스위스 제네바의 앙리 뒤낭 연구소,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연구소의 평화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인류의 미래를 새롭게 개척하는 평화의 장으로 거듭나야”
이렇듯 경희는 ‘평화’를 ‘전쟁 없는 상태’로만 보지 않았다. 평화의 탑에 새겨진 ‘평화는 개선보다 귀하다’는 경희가 추구하는 이상과 평화복지대학원의 구체적 실천 목표를 보여준다. 전쟁의 승리보다 소중한 평화를 의미하는데, 인간, 자연, 생명, 우주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평화를 지향한다. 궁극적으로 ‘마음의 평화’, ‘사회의 평화’, ‘인류의 평화’를 아우르는 ‘인간적인 문화세계’ 건설로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자는 염원을 담고 있다.
평화복지대학원 개원 4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은 경희가 그동안 추구해 온 평화의 의미와 이 시대가 요청하는 평화의 책무에 관한 생각을 나누면서 평화복지대학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권기붕 평화복지대학원 원장은 “평화라는 가치가 새롭게 정의되고 모든 이가 추구하는 가치로 재정립되지 않으면 그 미래가 불투명하고, 평화복지대학원도 그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우리가 모두 평화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지금의 세계 정세에서 목도하고 있다”면서 “전쟁에 대비해 개념화되고 이해된 평화의 가치를 넘어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전쟁이 가장 급박한 생존의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과 결부되는 한 평화는 전쟁이 초래하는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집단의 안위, 권리의 축소, 재산의 박탈을 막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한 전쟁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조건을 우리가 발견해야 하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평화의 주요 목적이 돼야 한다. 공평하고 화합하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깊은 가치화와 적극적인 노력이 평화의 요체가 돼야 한다. 내가 내 가족과 주변 지인들, 나아가 사회 구성원 전체, 인류와 함께 조화하는 삶, 이것이 평화의 궁극적 지향점이 돼야 한다. 평화복지대학원의 미래가 인류의 미래를 새롭게 개척하는 평화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 길을 열어가는 데 평화복지대학원 동문과 교수, 직원이 힘을 보탰다. 기념식에서 평화복지대학원 동문회는 발전기금 2억 원을 약정했다. 손재식 전 평화복지대학원 원장과 유호범, 오영달 동문, 황광일 전 평화복지대학원 행정실장 등은 기념식 당일에 발전기금을 기부했다.
평화복지대학원 개원 40주년 기념식에서 평화복지대학원 동문회는 발전기금 2억 원을 약정했다. 손재식 전 평화복지대학원 원장과 유호범, 오영달 동문, 황광일 전 평화복지대학원 행정실장 등은 기념식 당일에 발전기금을 기부했다.
‘마음의 평화’ 유지하며 자신과 공동체의 미래 설계하는 환경 조성
평화복지대학원은 크낙새 서식지로 유명한 경기도 남양주시 광릉숲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로부터 동북방 25㎞ 거리다. 평화복지대학원은 1983년 10월 29일 문교부(현 교육부)로부터 정식 설립 인가를 받았다. 본관, 도서관, 기숙사, 체육관, 명상대 등을 건축했고, 서울캠퍼스에 있었던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국제평화연구소, 밝은사회문제연구소 등을 이곳으로 이전시켜 평화 및 인류복지 연구의 요람을 구축했다.
교육은 세계평화와 인류의 복지 향상을 위해 봉사할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엘리트 교육에 중점을 뒀다. 과감한 교육 투자를 통해 국제 수준의 교육과 혜택을 제공했다. 우선, 모든 학생에게 5학기 전 재학 기간의 학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매 학기 세계 저명 정치인, 석학, 기업인 등을 교수로 초빙해 국내외 정세 및 현안에 관한 문제를 토의하면서 세계를 보는 안목을 넓히는 기회도 제공했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로버트 스칼라피노(Robert A. Scalapino) 교수, 코스타리카 대통령을 역임한 카라조 박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필립 토울(Philip Towle) 교수 등이 강단에 섰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했고, 교수 대 학생 비율은 1대 3~4를 유지했다. 또한, 교육과 실천을 결합한 인턴십을 의무화했다. 국내는 물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인턴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그 경험을 토대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했다. 평화복지대학원 기숙사 이름은 삼정서헌(三正書軒)이다. ‘삼정’이란 정지(正知), 정판(正判), 정행(正行), 곧 ‘바르게 알고 바르게 판단하며 바르게 실천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삼라만상을 생각하고 행동할 때 올바로 핵심을 꿰뚫어 보고 올바로 판단해 행동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정서헌 뒤편에는 100평 규모의 명상대가 자리한다. 학생들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자신과 공동체의 미래상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평화복지대학원은 1993년 유네스코 평화교육상을 수상했다. 개인이 아닌 교육기관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을 주도한 데 이어 역사상 최초로 『세계평화대백과사전』을 발간하고, 평화복지대학원을 설립해 인류의 미래를 위한 평화 연구와 교육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세계평화 운동의 요람이자 실천의 장, 미래를 위한 준비의 장
평화복지대학원 곳곳에는 이곳이 세계평화 운동의 요람이며 실천의 장이고 미래를 위한 준비의 장임을 뜻하는 조형물과 문구가 가득하다. 1990년 9월, 9회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해 제막한 평화의 탑이 대표적이다. 탑에는 ‘평화는 개선보다 귀하다’와 ‘지구촌-인류가족-세계공동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986년 세계평화의 해를 기념해 유엔이 기획한 ‘평화의 횃불 세계일주(First Earth Run)’ 당시 봉송된 횃불이 평화의 탑에 옮겨지기도 했다.
‘평화의 횃불 세계일주’는 1986년 9월 16일, 뉴욕 유엔본부 앞 광장에서 열린 세계평화의 해 기념식 후 시작됐다. 평화의 횃불은 유엔 사무총장과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조영식 박사 등의 손을 거쳐 39개국 67개 도시를 달릴 첫 주자에게 넘겨졌다. 그로부터 두 달 만인 1986년 11월 15일, 평화의 횃불을 든 주자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다음 날, 평화복지대학원에 들러 평화의 횃불을 밝혔다. 세계평화의 날과 해의 발상지가 경희였기 때문에 평화복지대학원이 평화의 횃불 봉송로에 포함될 수 있었다.
평화복지대학원은 1993년 유네스코 평화교육상을 수상했다. 개인이 아닌 교육기관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희가 그동안 인류의 미래를 위해 펼친 평화 교육과 연구, 평화 운동의 공을 인정받은 결과다. 평화복지대학원은 평화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하고, 평화 거버넌스 관련 학술·교육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축해 평화 가치 구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글 오은경 oek8524@khu.ac.kr
사진 커뮤니케이션센터 DB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202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