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의 새로운 미래를 열다
암 치료의 새로운 미래를 열다
기초한의과학과 배현수 교수·응용화학과 강성호 교수 공동연구팀이 종양 성장을 돕는 대식세포만 정밀 타격하는 펩타이드 기반의 신약후보 물질을 개발, 새로운 면역항암 전략을 제시하며 암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기초한의과학과 배현수 교수·응용화학과 강성호 교수 공동연구팀
펩타이드 신약후보 물질 ‘TB511’ 개발
암세포 대신 ‘조력자 세포’만 정밀 타격…새로운 면역항암 전략 제시
암은 여전히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질병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암 앞에서는 무력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다. 특히 췌장암, 폐암, 대장암 등 ‘고형암’ 환자들은 기존 항암 치료제에 잘 반응하지 않거나, 효과가 일시적인 경우가 많아 새로운 치료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각광받는 면역항암제도 모든 환자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특정 환자에게만 반응하고, 면역세포 전체를 억제해 부작용을 유발하는 등 한계가 분명하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초한의과학과 배현수 교수·응용화학과 강성호 교수 공동연구팀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의 면역항암제를 개발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암의 은신처’를 무너뜨리다: TB511의 새로운 전략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신물질 ‘TB511’은 기존 항암제처럼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기보다, 암이 성장하도록 돕는 면역억제성 환경을 해체하는 전략을 택한다. 암세포는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피하기 위해 주변에 일종의 '보호막'을 형성하는데, 이때 종양 관련 대식세포(TAM)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M2형 대식세포는 종양 내에서 면역반응을 억제하고 혈관신생을 유도해 암의 성장을 돕는다. 배 교수는 “암이 성(城)이라면, M2 대식세포는 그 주변을 둘러싼 방어벽과 같다”며 “TB511은 이 방어벽만 정확하게 무너뜨리는 정밀 유도탄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즉, TB511은 M2 대식세포가 유도하는 면역 억제 환경과 혈관신생 작용을 차단함으로써, 우리 몸의 정상 면역 시스템이 암을 다시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TB511의 개발 과정은 전통적인 신약 개발과는 다른 경로를 택했다. 대부분의 신약은 특정 표적 단백질을 먼저 설정하고, 이에 결합할 수 있는 물질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개발된다. 그러나 TB511은 한의학계에서 사용하던 독성을 갖는 펩타이드 후보물질에서 출발해, 이 펩타이드가 어떤 단백질에 작용하는지를 역으로 추적하는 과정을 거쳐 개발됐다. 공동연구팀은 펩타이드가 결합할 가능성이 있는 수십만 개의 단백질 후보를 질량분석으로 추린 뒤,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하나씩 유전자를 제거하며 표적을 좁혀갔다. 그렇게 찾아낸 표적이 바로 CD18 단백질이다.
연구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난관도 있었다. TB511의 표적 단백질인 CD18은 정상 면역세포에서도 광범위하게 발현되는 단백질이었기 때문에, 치료 표적으로 삼기엔 한계가 있었다. 배현수 교수는 “처음에는 TB511이 특정 면역세포만 선택적으로 타격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많이 고민했다”며, “그 실마리를 박사과정 시절 연구했던 G단백질의 구조 변화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CD18 역시 인테그린 계열 단백질로, 비활성 상태와 활성 상태에서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공동연구팀은 AI 기반 단백질-약물 결합 예측 모델을 이용해 TB511이 오직 ‘활성형 CD18’에만 결합한다는 가설을 세웠고, 고해상도 단분자 추적 현미경 분석 및 인간화 마우스 모델을 통해 이 가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공동연구팀은 신약 개발에 있어 AI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강조했다. 배 교수는 “개발 과정에서 AI 분석을 통해 종양에서는 CD18이 70% 이상 활성화되고, 정상 조직에서는 5% 이하로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불확실했던 연구에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언급했다.
TB511의 가장 큰 차별성은 바로 이 ‘정확한 타겟팅’에 있다. 기존 면역항암제는 T세포를 전반적으로 활성화시켜 암을 공격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정상 면역세포도 손상되어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반면 TB511은 종양 조직 내 대식세포에서만 작용하고, 정상 면역조직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펩타이드 기반 약물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항체 기반 치료제에 비해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배출되며, 조직 침투력도 뛰어나 환자의 부작용을 줄이면서 약물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공동연구팀은 “TB511은 유효성과 안전성 모두를 확보한 차세대 면역조절 물질”이라며 “기존의 면역항암제가 접근하지 못한 영역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TB511은 고형암 종양 내 면역억제성 면역세포인 M2형 종양관련 대식세포(M2-TAMs)를 선택적으로 제거하여, 살해T세포(CD8 T cell)의 종양 내 침투를 촉진시키고, 이를 통해 면역억제성 종양 미세환경을 면역활성 환경으로 전환시키는 항암 작용 기전을 갖는다. [그림]은 펩타이드 신약 TB511의 종양 미세환경 내 약리 기전.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테라노스틱스 기술로의 확장
공동연구팀은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분야로의 확장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TB511에 방사선 동위원소를 부착해 약물의 작용 위치를 실시간 영상으로 추적할 수 있는 동반진단법 개발도 병행 중이다. 배 교수는 “이 기술이 완성되면, 실제 환자의 몸속에서 어떤 경로로 이동하고 어느 부위에 작용하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환자의 병변 위치, 약물 반응 여부 등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어 향후 정밀 의료로의 응용도 가능하다.
TB511은 기존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던 고형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췌장암, 비소세포폐암, 대장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M2 대식세포는 공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적용 범위가 넓다는 강점도 존재한다. 더 나아가, 공동연구팀은 TB511이 폐섬유화, 간섬유화, 다발성 경화증 등 암 이외의 질환으로의 응용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이들 질환 역시 조직 내에 과활성화된 대식세포가 병인의 핵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TB511은 전임상 독성, 약동학적 안전성 및 임상시제품 완성 등의 과정을 마치고, 2024년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1/2a 시험을 승인받아 올해부터 본격적인 임상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공동연구팀은 TB511 단독요법 외에도 기존 항암제와의 병용 전략도 연구 중이다. 배 교수는 “TB511은 단순한 약물이 아니라, 면역항암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플랫폼 기술”이라며, “기초연구는 논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도달해야 의미가 있다. TB511이 암 치료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실질적 치료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끝까지 기술이전과 임상 진입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Journal for ImmunoTherapy of Cancer』 4월호에 게재됐다.
배현수 교수는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지적 호기심’을 꼽았다. 그는 “연구란 결국 지적 호기심을 좇는 여정”이라며, “관심 있는 주제를 끊임없이 탐구하려는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글 정예솔 wg1129@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2025.04.23